작가의 변(辯)


사이트를 만들며, 어딘가에 남겨놓고 싶은 나의이야기, 이 페이지를 발견하여 들어오신 분들은 호기심 + 관찰력이 많으신,,, ㅎㅎ 


준비만 15년,,, 너무 오래 준비만,,,


햇수로만 보면 거창하지만,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싶은지를 아직도 잘 모르는것 같아, 정리가 될까하여 좀 끄적여 사이트 오픈 즈음에 반추해 남겨봅니다.





평탄하게 살아온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고2말 즈음에, 미술이란 분야를 처음 접하고 1년여 준비를 해서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하고 일하고 회사창업하고 아이키우고,,  쓰고 보니 간단하게 시간이 훅 간것 같네요,,, ㅎㅎ 


사실 미술을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산업디자인과 안에 있는 공업디자인/시각디자인 세부 전공 차이도 몰랐었습니다. 초중고 내내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고 뭔가를 계속 만들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고3 무렵 아버지 회사 직원의 딸이 1년 준비하고 서울대 미대에 합격했다는 말에 홀린 어머니의 손이 이끌려 ^^ 강제 미대 입시생으로 시작은 그렇게 했었죠,,, 


집 앞 로데오 거리에 있던 학원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학원 처음갔을때 원장님이 디자인과 가면 라면봉지 같은거 만든다. 어처구니 없긴한데, 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고,,, 원장님이 순수 미술 전공자여서 그랬나 봅니다,,,

 


각설하고. 당시는 선지원 후시험 학력고사 였기 때문에, 원서마감 전날 눈치작전이 극심했던,,, 그래서 단순히 시각디자인과가 경쟁률이 낮아 지원했었는데, 다음날 보니 시각디자인과가 학교 전체서 제일 경쟁률이 높은 과가 되어 있어 빨간불 뜬 뉴스에 나오고,,, 망연자실,,, 그랬지만 입시란 결과가 나오기 전엔 알 수 없으니, 결국 어찌저찌 합격. 


억지로 시작은 했지만, 가 보니 학교 생활은 저에게는 좋았습니다. 필요없는 교과 공부 안해도 되고(1학년때는 교양 과목 때문에 좀 그랬지만 ㅎㅎㅎ ) , 전공 공부도 잘 맞아서 아이러니 하게도 장학금도 계속 받아가며 일생동안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였던것 같습니다. 세부전공 인원도 15명 정도인데 일부 군대가고 어쩌고 하면 12명 수준이어서 분위기도 좋고,,, 


군대를 마치고 복학을 하니 디자인에도 컴퓨터를 사용하는일이 태동하게 되었고,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디자인도 수작업이 주를 이루었던 시절이어서 신세계가 열린것이지요.

좀더 깊게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판단해, 맥킨토시(현 애플컴퓨터의 초기버전 이름) 한대를 들고 1년간 어학연수를,,, 뜬금없이 어학연수를 가면서 PC는 왜, 하겠지만, 나름대로는 영어도 배우고 1타 2피를 생각했는데,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1년동안 책보고 공부한 코딩, 오쏘링 저작 툴의 원리 등이 아직까지도 작업에 자양분이 되고 있으니,,,  

 

돌아와 졸업 무렵에 닷컴 붐이어서, 4학년초에 졸업 전에 취업이 되어 낮엔 수업하고 밤엔 회사가고 하는 이상한 생활을 좀 하게 되습니다. 그 당시는 WEB1.0 시절이고 기존 디자이너들은 해당 분야를 거의 몰랐기 때문에,,, 인력수급이 아주 어려웠던 시기여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닷컴버블시절을 관통하며  [ 뉴미디어회사 > 영상회사 > 그래픽/아이덴티티회사 > 게임회사 ] 등을 거치니 이제 관심 있는 회사는 거의 다녀본 셈이라.


디자인회사를 창업 하고 또 열심히 일하고, 이 무렵에 대학원도 졸업해 석사 취득하고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아이도 태어나고 하면서 아주 바쁘게 정신없게만 살던 시기,,, 그러다 10년째 되는 해에 동업자와 관계가 빠그려져, 회사가 엎어졌다가 - 아직까지도 화가 나는 일 중 하나 입니다만,,, 다 저에겐 배움의 시간 이었겠지요.   


당시엔 아이도 어릴때여서 정말 캄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대반전입니다. 이후 하는 일이 다 잘되었으니까요. 더 일찍 아니 아예 시작도 안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회한만 남았지만,,,,


다시 회사를 창업하고 혼자 광야에 서 보니 전투력도 상승하고 헛살지는 않았는지 주변 지인들의 도움도 많이 받고하여 전 사업에서 떠안은 부채도 금방 상환할 수 있었고,   


또 열심히 일하보니. 다시 살만해 졌습니다. 재창업후에는 좋은 사람들만 만난것 같고, 참 재수좋게 잘 지내온것 같긴 하지만, H1-KEY의 '건물사이에 피어난 장미' 가사처럼 어렵게 나와 악착같이 살았던것 같네요,,  아내 덕분에 힘든시기 잘 버틸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어차피 결국은 이리로 갈 일이었나,,,


본래 저의 본업은 시각디자인,  그 중에서도 정확히는 New Media / UX 인데, 이것도 이제 시간이 지나서 모호해졌군요 ^^


지면이나 사물이 아닌 화면상에 뜨는 것은 모두 디자인 한다고 보면 됩니다.


업의 특성상 제 작업들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가 전부라서, 시간이 갈수록 좀 허무하달까,


그래서 시작한 것이 RC 비행기였는데, 대부분은 키트로 된 완제품을 사서 날리기만 하는데, 저는 발사 나무를 하나하나 깎아 설계한 대로 구조를 만들고 엔진을 달고 무선 조종기로 이륙시켰다가 착륙하게 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무로 뭔가 만들기는 다시 시작되고 있었나 봅니다. 같이 RC 시작했던 형은 지금도 공방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애들처럼 비행기나 날리지 말고 만드는것 좋아하니 가구를 만들어 보라고,,,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 공동육아를 해야 하는 남편이 매주 토요일에 집을 비운다는게 쉽지 않은데, 아내의 허락을 득했으니 달려야지요. 


아마 은퇴없이 평생 일하라는 아내의 큰 그림 이었을수도,,, ㅎㅎ





2008 목공을 접하게 되어,,, 


취미 공방을 좀 다녀보니 저랑은 맞지 않더군요, 그 당시는 대부분의 목공방이 제가 보기엔 좀 원시적 이었습니다.


하루종일 맨손으로 끌갈고 각잡고,,,  얼핏 우아해 보이긴 하지만 제 성향에는 안맞았던,,,


그래서 중단하고, 지인과 홍대옆 상수동에 개인 작업실을 얻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다보니 1~2년으로 될 일이 아니란 걸 깨닫고, 작업의 편의성을 위해 기계가 늘어나다보니 점점 넓어지고 함께하는 회원들도 늘어나고 하여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버리는 지경에 오게 됩니다.     


목공 초반 집을 구매하면서 만들게 많아지고 한참을 직접 제작한 가구로 집을 채워가다가, 중간에 집을 넓히면서 단순 가구뿐 아니라 문짝, 설치물 등도 제작하며 제작물들을 몇년간 계속 테스트하고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고 주변 지인들 집에 보내 이리저리 뒤틀리는 나무들을 보며 아주 좋은 경험의 수치가 쌓였습니다.


나무는 난방과 냉방이 교차하는 집안에 들이는 순간부터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보통은 사업을 한다면 초반에 제작 경험 부족에 하자로 이어질 일들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완벽은 어렵습니다. 어쩌면 완벽은 없을것 같습니다.






인제 어떻게 하지?   

이렇게 칼만 갈다가는 
칼자루까지 갈아버리겠다,,,


작년 드디어 성인이 된 딸아이는 다행히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고, 신나게 1학년을 즐기고 이제 2학년에 접어드니 슬슬 고민의 시간,, 서울대를 가도 뭐가 보장되는건 아니니, 본인도 아마 계속 고민하게 되겠지요,, 


아이가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고 나니,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던 나도 뭔가 숙제 하나를 끝낸 느낌이라 내 나머지 생에 대한 고민도 깊어 지기 시작하고,,,






나도 이제 고민,,,


사실 목공처음 시작할때부터 목표는 언젠가 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디자인 일의 특성상 타인의 브랜드 만드는 일 도와주는 것이 주된 업무인데, 이쯤 남의 일 도와줬으면 나의 일도 할때가 된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 판단은 안되는데 뭐만 해볼려고 하면 본업이 밀려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 그래서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지는 못하는 우유부단,,, 다행이긴 합니다, 뭐들 하던 벌긴 벌었으니,,,




하지만 시점이 문제고 
언제고 할 일이니 
용기만 필요한 시점,,,


공방 초기에 이거 왜하냐고 누가 물어보면, 구구절절 설명하기 피곤하여 나중에 나이들어서 노년에 파고다공원 가기 싫어서 그렇다고 말하곤 했는데, 실은 용기가 없었던것 같습니다. 


더 늦어지면 그냥 다시 지금에 안주하게될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또 한 10여년 훅 가서 손주나 봐야하는 뒷방 할아버지가 될것 같은 중년의 위기감.


내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니, 너무 너무 사랑스러웠던 내 아이의 미니미를 다시 보게 될 것 같아 기대가 좀 되긴 하지만,,  ㅎㅎㅎ





암튼


또 한 10년 지나
그때 다시 이 글을 보면 웃고 있을지,


언제나 그렇듯 길은 찾겠지만,,, 



긴 글 찾아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3.01



작가의 변(辯)

사이트를 만들며, 어딘가에 남겨놓고 싶은 나의이야기, 이 페이지를 발견하여 들어오신 분들은 호기심 + 관찰력이 많으신,,, ㅎㅎ 

준비만 15년,,, 너무 오래 준비만,,,

햇수로만 보면 거창하지만,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싶은지를 아직도 잘 모르는것 같아, 정리가 될까하여 좀 끄적여 사이트 오픈 즈음에 반추해 남겨봅니다.


평탄하게 살아온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고2말 즈음에, 미술이란 분야를 처음 접하고 1년여 준비를 해서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하고 일하고 회사창업하고 아이키우고,,  쓰고 보니 간단하게 시간이 훅 간것 같네요,,, ㅎㅎ 


사실 미술을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산업디자인과 안에 있는 공업디자인/시각디자인 세부 전공 차이도 몰랐었습니다. 초중고 내내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고 뭔가를 계속 만들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고3 무렵 아버지 회사 직원의 딸이 1년 준비하고 서울대 미대를 합격했다는 말에 홀린 어머니의 손이 이끌려 ^^ 강제 미대 입시생으로 시작은 그렇게 했었죠,,, 


집 앞 로데오 거리에 있던 학원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학원 처음갔을때 원장님이 디자인과 가면 라면봉지 같은거 만든다. 어처구니 없긴한데, 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고,,, 원장님이 순수 미술 전공자여서 그랬나 봅니다,,, 


각설하고. 당시는 선지원 후시험 학력고사 였기 때문에, 원서마감 전날 눈치작전이 극심했던,,, 그래서 단순히 시각디자인과가 경쟁률이 낮아 지원했었는데, 다음날 보니 시각디자인과가 학교 전체서 제일 경쟁률이 높은 과가 되어 있어 빨간불 뜬 뉴스에 나오고,,, 망연자실,,, 그랬지만 입시란 결과가 나오기 전엔 알 수 없으니, 결국 어찌저찌 합격. 


억지로 시작은 했지만, 가 보니 학교 생활은 저에게는 좋았습니다. 필요없는 교과 공부 안해도 되고(1학년때는 교양 과목 때문에 좀 그랬지만 ㅎㅎㅎ ) , 전공 공부도 잘 맞아서 아이러니 하게도 장학금도 계속 받아가며일생동안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였던것 같습니다. 세부전공 인원도 15명 정도인데 일부 군대가고 어쩌고 하면 12명 수준이어서 분위기도 좋고,,, 


군대를 마치고 복학을 하니 디자인에도 컴퓨터를 사용하는일이 태동하게 되었고,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디자인도 수작업이 주를 이루었던 시절이어서 신세계가 열린것이지요.

좀더 깊게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판단해, 맥킨토시(현 애플컴퓨터의 초기버전 이름) 한대를 들고 1년간 어학연수를,,, 뜬금없이 어학연수를 가면서 PC는 왜, 하겠지만, 나름대로는 영어도 배우고 1타 2피를 생각했는데,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1년동안 책보고 공부한 코딩, 오쏘링 저작 툴의 원리 등이 아직까지도 작업에 자양분이 되고 있으니,,,  

돌아와 졸업 무렵에 닷컴 붐이어서, 4학년초에 졸업 전에 취업이 되어 낮엔 수업하고 밤엔 회사가고 하는 이상한 생활을 좀 하게 되습니다. 그 당시는 WEB1.0 시절이고 기존 디자이너들은 해당 분야를 거의 몰랐기 때문에,,, 인력수급이 아주 어려웠던 시기여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닷컴버블시절을 관통하며  [ 뉴미디어회사 > 영상회사 > 그래픽/아이덴티티회사 > 게임회사 ] 등을 거치니 이제 관심 있는 회사는 거의 다녀본 셈이라.


디자인회사를 창업 하고 또 열심히 일하고, 이 무렵에 대학원도 졸업해 석사 취득하고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아이도 태어나고 하면서 아주 바쁘게 정신없게만 살던 시기,,, 그러다 10년째 되는 해에 동업자와 관계가 빠그려져, 회사가 엎어졌다가 - 아직까지도 화가 나는 일 중 하나 입니다만,,, 다 저에겐 배움의 시간 이었겠지요.   


당시엔 아이도 어릴때여서 정말 캄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대반전입니다. 이후 하는 일이 다 잘되었으니까요. 더 일찍 아니 아예 시작도 안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회한만 남았지만,,,,


다시 회사를 창업하고 혼자 광야에 서 보니 전투력도 상승하고 헛살지는 않았는지 주변 지인들의 도움도 많이 받고하여 전 사업에서 떠안은 부채도 금방 상환할 수 있었고,   


또 열심히 일하보니. 다시 살만해 졌습니다. 재창업후에는 좋은 사람들만 만난것 같고, 참 재수좋게 잘 지내온것 같긴 하지만, H1-KEY의 '건물사이에 피어난 장미' 가사처럼 어렵게 나와 악착같이 살았던것 같네요,,  아내 덕분에 힘든시기 잘 버틸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어차피 결국은 이리로 갈 일이었나,,,


본래 저의 본업은 시각디자인,  그 중에서도 정확히는 New Media / UX 인데, 이것도 이제 시간이 지나서 모호해졌군요 ^^


지면이나 사물이 아닌 화면상에 뜨는 것은 모두 디자인 한다고 보면 됩니다.


업의 특성상 제 작업들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가 전부라서, 시간이 갈수록 좀 허무하달까,


그래서 시작한 것이 RC 비행기였는데, 대부분은 키트로 된 완제품을 사서 날리기만 하는데, 저는 발사 나무를 하나하나 깎아 설계한 대로 구조를 만들고 엔진을 달고 무선 조종기로 이륙시켰다가 착륙하게 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나무로 뭔가 만들기는 다시 시작되고 있었나 봅니다. 같이 RC 시작했던 형은 지금도 공방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애들처럼 비행기나 날리지 말고 만드는것 좋아하니 가구를 만들어 보라고,,,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 공동육아를 해야 하는 남편이 매주 토요일에 집을 비운다는게 쉽지 않은데, 아내의 허락을 득했으니 달려야지요. 


아마 은퇴없이 평생 일하라는 아내의 큰 그림 이었을수도,,, ㅎㅎ



2008 목공을 접하게 되어,,, 


취미 공방을 좀 다녀보니 저랑은 맞지 않더군요, 그 당시는 대부분의 목공방이 제가 보기엔 좀 원시적 이었습니다.


하루종일 맨손으로 끌갈고 각잡고,,,  얼핏 우아해 보이긴 하지만 제 성향에는 안맞았던,,,


그래서 중단하고, 지인과 홍대옆 상수동에 개인 작업실을 얻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다보니 1~2년으로 될 일이 아니란 걸 깨닫고, 작업의 편의성을 위해 기계가 늘어나다보니 점점 넓어지고 함께하는 회원들도 늘어나고 하여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버리는 지경에 오게 됩니다.     


목공 초반 집을 구매하면서 만들게 많아지고 한참을 직접 제작한 가구로 집을 채워가다가, 중간에 집을 넓히면서 단순 가구뿐 아니라 문짝, 설치물 등도 제작하며 제작물들을 몇년간 계속 테스트하고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고 주변 지인들 집에 보내 이리저리 뒤틀리는 나무들을 보며 아주 좋은 경험의 수치가 쌓였습니다.


나무는 난방과 냉방이 교차하는 집안에 들이는 순간부터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보통은 사업을 한다면 초반에 제작 경험 부족에 하자로 이어질 일들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완벽은 어렵습니다. 어쩌면 완벽은 없을것 같습니다.


인제 어떻게 하지?   
이렇게 칼만 갈다가는 칼자루까지 갈아버리겠다,,,


작년 드디어 성인이 된 딸아이는 다행히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고, 신나게 1학년을 즐기고 이제 2학년에 접어드니 슬슬 고민의 시간,, 서울대를 가도 뭐가 보장되는건 아니니, 본인도 아마 계속 고민하게 되겠지요,, 


아이가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고 나니,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던 나도 뭔가 숙제 하나를 끝낸 느낌이라 내 나머지 생에 대한 고민도 깊어 지기 시작하고,,,




나도 이제 고민,,,


사실 목공처음 시작할때부터 목표는 언젠가 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디자인 일의 특성상 타인의 브랜드 만드는 일 도와주는 것이 주된 업무인데, 이쯤 남의 일 도와줬으면 나의 일도 할때가 된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 판단은 안되는데 뭐만 해볼려고 하면 본업이 밀려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 그래서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지는 못하는 우유부단,,, 다행이긴 합니다, 뭐들 하던 벌긴 벌었으니,,,


하지만 시점이 문제고 언제고 할 일이니 용기만 필요한 시점,,,


공방 초기에 이거 왜하냐고 누가 물어보면, 구구절절 설명하기 피곤하여 나중에 나이들어서 노년에 파고다공원 가기 싫어서 그렇다고 말하곤 했는데, 실은 용기가 없었던것 같습니다. 


더 늦어지면 그냥 다시 지금에 안주하게될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또 한 10여년 훅 가서 손주나 봐야하는 뒷방 할아버지가 될것 같은 중년의 위기감.


내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니, 너무 너무 사랑스러웠던 내 아이의 미니미를 다시 보게 될 것 같아 기대가 좀 되긴 하지만,,  ㅎㅎㅎ



암튼


또 한 10년 지나 그때 다시 이 글을 보면 웃고 있을지,


언제나 그렇듯 길은 찾겠지만,,, 



긴 글 찾아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3.01







483Craft © All Rights Reserved  

483Craft    I   CEO : 박승필
경기도 파주시 맥금동 483-22  483Craft빌딩

518-71-00229

제2018-경기파주-1360호

010-2598-0483   483craft@naver.com 


이용약관  I  개인정보처리방침
배송/보증/제품케어 관련 주의사항
무통장입금  : 농협은행 3120191288631



   Home                   About                   Crafts                   Order                   Academy

483Craft © All Rights Reserved  

483Craft    I    CEO : 박승필    I    10847 경기도 파주시 맥금동 483-22    483Craft빌딩    I    무통장입금  : 농협은행 3120191288631

518-71-00229    I    2018-경기파주-1360호    I     010-2598-0483     483craft@naver.com    I    이용약관    I    개인정보처리방침    I    배송/보증/제품케어 관련 주의사항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